건립 역사

"무에서 유를 창조하자"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본부 청사 건립(1953-1958) 소식은 우리에게도 '세계문화교류의 전당' 건립의 꿈을 심어주었다.

"우리도 초현대식 건물을 세워 매스커뮤니케이션센터를 비롯해 강당.도서관.영화관.미술실.음악실.편집실.소극장.국제문화자료조사연구소.TV방송실 등 국제문화 교류와 일반대중의 지적.정서적 요구에 응할 수 있는 필요한 온갖 시설을 전부 갖추자" (1957.9.21, 유네스코회관 건립추진 기자회견)

첫 삽을 뜨다

"1959년 4월 11일 상오 10시 서울 명동 2가 82번지 국립극장 앞 공지에 지상8층으로 건축되는 한국 유네스코회관 건축 기공식이 내외관민 다수 참석리에 성대히 거행되었다. 총예산 3억7천만환 건축기간 3년간 예정으로 착공되는 것이라고하며 연건평 2천7백평에 달하는 각층각실에는 외국귀빈들의 숙소, 백화점, 도서관 등을 구비하는 동시에 유네스코아세아지역대회장도 준비할 것이라고 한다." (1959.4.11. 조선일보)

8년에 걸친 험난한 공사

착공 28개월만인 1962년 7월 상량식을 올린 회관은 배기형의 설계(현상모집 당선작)로 동양에서 으뜸가는 "지성의 궁전"을 꿈꾸었으나, 재정조달 문제와 건립 추진 조직의 내부 분규 등으로 빼대만 갖춘 채 공사가 중단되어 "명동의 도깨비집"으로 불리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겠다는 꿈은 난항을 거듭했다.

마침내 우뚝 서다

"나는 유네스코회관의 역사적인 준공식에 즈음하여 친애하는 국민과 더불어 무한한 감격과 감개에 서 있읍니다. (중략)

본회관이 오늘의 위용과 웅자를 갖추기까지 우리에게는 허다한 난관과 시련이 있었읍니다. 그러나 이와같은 난관과 시련은 세계 국민간의 무지와 오해 및 빈곤의 장벽을 허물고 인간의 마음속에 세계평화의 터전을 마련해서 인류의 복지증진에 이바지하려는 숭고한 우리들의 굳은 결의로써 극복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터전에서 보다 힘차게 교육 과학 및 문화를 통하여 참신한 국제적 지식과 공정한 국제적 이해를 전국민에게 보급시킬 것입니다. 그리하여 활발한 국제적 교류를 통하여 바야흐로 무르익는 조국의 근대화 작업을 촉진시킬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1959.2.17. 유네스코회관 준공식.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위원장 문교부장관 문홍주 인사말)

서울미래유산

"건축가 배기형(1917-1979)이 설계하여 1967년 준공된 13층 건축물이다. 우리나라 교육·과학·문화의 국제교류센터로서 다양한 기능을 수용하며 명동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당시 기술로는 적용이 어려웠던 알루미늄 커튼월 공법을 외관 전면에 구현하여 1960년대 우리나라 건축 기술의 위상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되었다."